내 의사결정의 3가지 원칙

지금 내리는 결정이 정말 의사결정일까? 지금이 결정할 때가 맞을까? 좋은 과정으로 결정하고 있을까? 10년간 제품을 만들며 체득하고 다듬어왔던 의사결정의 세 가지 원칙과 실전에서 쓸 수 있는 구체적인 판단 기준을 소개합니다.

내 의사결정의 3가지 원칙

10년 정도쯤 전에 알게 된 의사결정의 좋은 원칙이 있다.

  • 첫째, 내가 지금 뭔가 결정하는 것이 의사결정인지 아닌지를 구분한다.
  • 둘째, 내가 지금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때인지 아닌지를 구분한다.
  • 셋째, 만약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때라면, 그 결정이 나쁜 과정으로 결정한 것인지 좋은 과정으로 결정한 것인지를 구분한다.

나의 10년은 이 원칙을 좀 더 실행 가능한 규칙으로 조금씩 바꿔 나가는 과정이 아니었나 싶다. 특히 최근의 3년 정도의 시간은 이 원칙을 규칙으로 바꾸고 실패하는 과정의 반복이었다.

각 원칙을 살펴보자.

지금의 결정은 의사결정인가 아닌가?


이건 사실 약간 말장난 같다고 느낄 수 있는데, 나는 뭔가를 결정하는 행위가 꼭 모두 다 의사결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서 굉장히 명확하게 어떤 결과가 기대되는 상황에서 하는 결정은 그냥 결정이지 의사결정은 아니다.

이 이야기는 의사결정과 그냥 결정을 나누는 가장 명확한 기준은 '의사결정의 기대 결과 실현의 불확실성'이다. 즉, 내가 지금 하는 결정이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을지 아닐지가 불확실하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결정을 해야 할 때가 있는데..그 때 하는 결정이 의사결정이다.

내 표현으로는 이렇다.

이 결정에서 사용하는 프레임워크가 존재하고, 그 프레임워크에 필요한 정보들이 충분히 모여서, 그 결정의 파급 효과가 크지 않거나, 가역적이거나, 불확실성이 낮다면 그것은 그냥 결정입니다. 반대로 프레임워크를 뭘 써야 할지 모호하며, 정보가 충분히 모이지 않은 상태, 즉 불확실성이 큰 상태에서 결정해야 한다면 그것은 의사결정입니다. 여기서 이 결정의 파급 효과가 크거나 비가역적이라면 더욱더 의사결정이 됩니다.

여기서 내가 보는 의사결정과 보통의 결정을 구분하는 기준은 3가지다.

  • 가역적인가 비가역적인가?
  • 파급 효과가 큰가?
  • 불확실성이 큰가?

이런 구분을 해두는 이유는 나머지 2개 원칙을 위해서다. 이제 그 이야기를 해보자.

이제 드디어 '의사결정할 순간'인가?


앞에서 말하는 의사결정을 구분하는 기준은 결과에 포커스를 뒀다면, 결정을 해야 할 시점을 가늠하는 것은 내가 결정에 쓸 재료가 충분히 모였는가 아닌가에 포커스를 둔다. 즉, 내가 지금부터 더 정보를 모으거나 프레임워크를 가다듬는 것이 의사결정의 퀄리티를 더 높이지 못하는 순간을 감지하는 것이다.

보통은 이렇게 표현한다.

정보를 더 모으거나 프레임워크를 더 다듬는 일 역시도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로 합니다. 내가 이 정보를 더 모으고, 프레임워크를 다듬는 비용이 의사결정의 퀄리티를 마지널(marginal)하게 더 높여주지 못한다면 이제는 결정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게 말은 그럴싸한데... 의사결정의 한계 효용을 측정하는 일은 굉장히 어렵다. 나 역시도 이것을 감(gut feeling)으로 추정하는 것이 대다수였다. 특히 이것도 결정할 시점의 가장 이른 시점과 가장 늦은 시점(데드라인)이 있음을 가정한다면 가장 이른 시점을 잘 찾는다면 정말 좋을텐데(자원을 덜 낭비할테니까..) 그건 정말 어려웠다.

내가 쓴 방법은 늦은 시점을 디텍트하는 것이었는데, 3가지 방법을 썼다.

  1. 내가 모든 각도에서, 고려 중인 결정안들에 대한 그럴싸한 찬반 의견 모두를 제시할 수 있다.
  2. 내가 이 문제에서 한 발자국 이상 떨어져 있는 사람이나 이런 문제를 해결한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도 조언을 구하고 있다.
  3. 내가 정보를 더 업데이트하거나 새로운 뭔가를 학습하기보다 계속 같은 정보만 검토하고 있다.

이 3가지 중 하나의 상태가 되었다면 사실상 의사결정의 이른 시점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으며, 3가지 중 셋 모두를 하고 있는 상태라면 의사결정의 데드라인을 이미 지났다고 판단했다. 이 기준을 업데이트 한 것도 최근 6개월 정도인데 생각보다는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았다.

이 의사결정은 좋은 과정으로 결정했나?


나는 의사결정들은 그 결과만으로 평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결국 남는 것은 결과라고 생각하는 분들이야 동의하지 않겠지만.

옳은 결정이 항상 의도한 결과를 낳지 않는다. 현실 세계는 복잡계이고, 운이라는 것도 강하게 작동한다. 냉정하게 본다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내 결정 과정 뿐이다.(그마저도 아닌 경우가 많다.) 여기서 나를 우리 팀, 우리 회사로 바꿔봐도 똑같다. 그렇기 때문에 결정의 품질은 결과와 동일시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보통은 의사결정을 하고 나서 그 결과가 나오는 시점이 되었을 때는 내가 좋은 과정으로 결정했는지를 살펴본다. 어쩌면 이 행동 역시 제품을 오래 관리하면서 가진 생각일지도 모른다. 결과 지표보다는 선행 지표를 노리는게 일상적이어서 이렇게 된게 아닌가 싶다. 😄

좋은 의사결정 과정은 무엇인가에 대한 힌트는 앞에서 나왔기에 간단하게만 정리한다.

  1. 의사결정인지 아닌지를 고려했는가? 파급효과와 가역성에 대해 판단했으며, 정보의 임계 지점에 도달했다는 적절한 판단을 했는가?
  2. 이 의사결정에 적절한 프레임워크를 쓸 수 있게 현상을 잘 쪼개어서 접근했는가? 즉, 좋은 구조화를 했는가?
  3. 의사결정을 할 시점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은 옳았는가? 너무 늦지 않았나? 너무 이르지 않았나?

그리고 여기에서 딱 하나를 더 봤다.

내가 결정하고 실행한 일은 어떤 선행 결과(혹은 선행 지표)를 어떻게 바꾸는 일인가?

이렇게 의사결정의 과정, 퀄리티를 판단했다. 물론 그렇다고 결정을 이렇게만 하면 결과에 대한 책임이 사라진다는 뜻은 아니다. 의사결정을 다루고 나면 실행을 다뤄야 한다. 그건 나중에 또 기회가 될 때, 적어보겠다. 이제 장을 보고 아점을 차려야 한다. 😄


정리하며

나의 모든 행동들은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집요하게 찾고 정리하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조금이라도 확장하며,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괴롭지 않게(그래야 다음에 더 좋은 시도를 할 수 있으니..) 만드는 일들이다.

방망이 깎는 노인이 계속해서 방망이를 깎았다면, 나는 나의 통제 범위와 그 속에서 수행하는 모든 내 행동들의 퀄리티를 깎는 중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여러분들에게 꼭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 나도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남들과는 조금 다르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긴 시간을 일해왔으니 평범하지 않다고는 생각한다. 다만, 이런 생각으로 일을 하는 분들에게는 내 이야기가 도움이 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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