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대화는 없지만, 준비된 대화는 있다 - AI를 활용한 시뮬레이션 경험기
원온원 전날 밤, 노트북을 펼친다. AI와 함께 내일의 대화를 시뮬레이션하기 위해서다. 10개가 넘는 시나리오를 준비해도 실제 대화는 예상과 다르게 흘러간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준비할수록 즉흥적인 대응이 더 자연스러워진다. 스포츠 경기처럼 대화도 전략과 연습이 필요하다. 완벽하진 않아도, 준비된 대화는 확실히 다르다. 당신의 다음 중요한 대화는 언제인가?

오늘 몇 개의 중요한 원온원을 앞두고 있던 어제 저녁, 저는 노트북을 펼쳤습니다.
한 주의 계획을 세우거나, 지난 주에 못다한 일을 마무리하는 것은 아니었어요.(물론 보통의 주말 저녁은 이런 일들을 하죠.😄 ) AI와 함께 내일 있을 대화를 시뮬레이션하기 위해서 노트북을 열었습니다.
대화도 연습이 필요하다
우리는 중요한 발표 전에는 수없이 연습합니다. 마치 스포츠 경기 전에 감독이 상대 팀에 맞춘 전략과 전술을 짜고, 그것을 팀에 브리핑하고 훈련하는 것처럼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중요한 대화 앞에서는 이런 연습 없이 참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냥 생각 몇가지를 정리하고, 이런 대화를 해야겠지 정도로 생각하면서 '생각으로만 몇가지 시나리오를 준비'할 뿐이죠. 아마 그 순간 우리의 머릿 속에는 '상황이 닥치면 잘 할 수 있을거야'라는 생각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도 예전에는 그랬습니다. 그러다 몇 번의 아쉬운 대화를 하고선 깨달았죠. 대화도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런 경험이 없이도 잘하면 참 좋을텐데 말이죠. 😄
AI를 활용하는 법
제가 사용하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 1단계: 전문가 소환 "이번 대화를 준비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문가를 추천해줘"라고 AI에게 묻습니다. 협상 전문가, 심리상담사, 커뮤니케이션 코치... AI는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죠. 이 사람들 중에서 지금의 대화에 잘맞는 사람과 아닌 사람을 추천해달라고 하고, 각각의 전문가들이 맞는 이유와 아닌 이유를 확인합니다. 그러고선 전문가를 선택하죠.
- 2단계: 캐릭터 설정 대화 상대방의 성향을 입력합니다. 과거 대화에서 보인 패턴, 평소 커뮤니케이션 스타일, 관심사 등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저의 성향, 대화 스타일, 사상도 입력하는 것입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고 했으니...저 스스로에 대해서도 메타인지를 끌어올리는게 정말 중요합니다.
- 3단계: 시뮬레이션 AI와 함께 다양한 시나리오를 연습합니다. 때로는 AI가 상대방 역할을 맡아 실제로 대화를 주고받기도 합니다. 굉장히 다양한 시나리오를 시뮬레이션 하고, 그 시나리오별로 꼭 '하면 안 되는 말'을 체크합니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스크립트를 만들어봅니다.
-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 "만약 이런 질문이 나오면?"
- "이 주제는 어떻게 접근하는 게 좋을까?"
-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말은?"
준비의 역설
재미있는 것은, 실제 대화가 시뮬레이션대로 흘러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제가 시뮬레이션을 잘 못하는 것도 있겠죠. 😄
최근 몇개월 동안 중요한 대화를 앞두고 항상 그 대화 몇시간 전에 1~2시간 동안 AI와 시뮬레이션을 했습니다. 어떤 대화는 10개가 넘는 시나리오로 흘러갈 수 있다는 점도 깨달았죠. 그 각각의 시나리오에 대한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실제 대화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당황했지만, 여러 시나리오에 흩어진 일부 상황과 대화들의 범주 안에 있는 것들이 많아서 다행히 잘 대응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결과를 봤을 때, 저의 준비가 무의미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준비가 주는 것
이런 준비를 통해서 저는 아래의 4가지 가치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1. 명확성 상대방에 대해, 그리고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대해 명확해집니다.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생각들이 구체적인 문장으로 정리됩니다. 생각을 할 때, 문장의 형태로 정리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보통은 문장의 어미 정도와 나의 생각 정도가 약간 모호한 형태로 뭉쳐 있습니다. 이런 시뮬레이션은 이런 뭉쳐 있는 생각을 씨줄과 날줄로 다시 풀어서 구체적인 형태를 만들어줍니다.
2. 자신감 "이런 말이 나와도 대응할 수 있어"라는 자신감까진 사실 안 생깁니다. 아이러니하지만 정말 그렇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내가 꼭 해야 하는 말, 그리고 하면 절대 안 되는 말들을 더 잘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니 "큰 실수를 범하지는 않을 수 있어."라는 자신감은 생깁니다. 그리고 무엇을 배려해야 하는지, 무엇을 놓치면 안 되는지는 알고 있으니 전반적인 대화가 긴장보다는 자연스러운 방향으로 흘러가기 좋습니다.
3. 유연성 역설적이지만, 충분히 준비할수록 예상 밖의 상황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시나리오를 고민해봤기 때문에 즉흥적인 대응도 더 수월해집니다. 저는 이런 유연성이 어디에서 나올까를 오래 고민해봤는데, 결국 저 시뮬레이션 과정에서 제가 견지해야 할 중심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정리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4. 공감의 연습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이 사람은 왜 이렇게 반응할까?"를 미리 고민하면서 더 깊은 공감이 가능해집니다. 사실 우리는 상대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서는 곳이 다르면 보는 곳이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나 내가 상대와 같은 처지에 있어봤기 때문에 더 잘 안다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그 분들께는 웹툰 <송곳>에 나왔던 이 씬을 보여 드리고 싶네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완벽한 대화는 없습니다. 아무리 준비해도 예상치 못한 감정이 올라오고, 계획에 없던 말이 튀어나옵니다.
하지만 준비된 대화는 다릅니다. 방향을 잃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정성 있게 상대방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다음 중요한 대화를 앞두고 계신가요? 30분만이라도 투자해서 AI와 함께 리허설을 해보세요. 조금 더 시간이 있다면 1시간을 투자해보세요. '1시간도 안 되는 대화를 위해 1시간을 준비한다니 너무 비효율적이잖아.'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아마 어떤 대화는 대화는 1시간이지만 그 대화가 끼치는 영향은 1년일 수 있습니다. 이런 대화를 앞두고 나이브하게 준비하지 마세요.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분명 더 나은 대화를 할 수 있는 방법은 분명히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경영 상에 필요한, 혹은 사람 관리(people managing)에 필요한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