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마치며 든 생각
2년간의 세종 생활을 마무리하고 서울로 이사하면서 겪은 경험을 PM 관점에서 회고한 글입니다. 짐 정리 과정에서 맥락 부족으로 인한 비효율을 경험하며 '매니저 관리', '규칙 설정', '우선순위 정하기'의 중요성을 깨달았어요. 일할 때와 일상에서의 접근 방식 차이를 발견한 메타인지를 담은 신변잡기 글입니다.
5일 전에 2년 간의 세종 생활을 마무리하고 서울로 다시 올라왔다. 정확히는 판교에서 세종으로 이사 갔다가 서울로 올라왔다. 지금까지는 집이 계속 넓어지는 경험만 하다가 이번에는 집이 꽤 좁아졌는데, 덕분에 이사를 한 월요일부터 시작해서 화/수/목/금 나흘 동안 계속 짐을 정리했다. 그 외에도 사람들이 와서 처리해야 하는 작업(에어컨 청소, 설치, 도어락 교체, 샤시 수리 등등)을 하느라 계속 집에 있었다. 그래도 리프레시 휴가를 써서 잘 대응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
이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는데,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이거였다.
레거시 제품을 개혁하는 신규 제품을 출시하는 날에 입사한 뉴비 PM의 기분이 이렇겠구만..
뭐랄까 맥락을 잘 모르는 것들은 굉장히 많은데, 일을 빨리빨리 해결을 해야 하니 답답하면서도 힘든 순간이 많았다.
- 짐들을 정리하는데, 사용 맥락을 모르는 짐들이 튀어나오니 이 짐을 분류할 기준을 잡는게 쉽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매번 아내에게 이건 뭐야? 이건 얼마나 자주 써? 등등을 물어보면서 일을 해야 했다.
- 짐 보관의 기본 룰 세팅을 하지 않은채로 무작정 정리를 하다보니 몇번이나 짐을 새로 정리해야했다. 일례로 베란다에 있는 붙박이장과 짐을 쌓아두는 방에 있는 랙 사이를 몇 번이나 왔다갔다하면서 땀을 흘려야했다.
- 짐들 중에 정말로 히스토리 자체를 모르겠는 짐이 너무 많아져버렸다. 예를 들어서 어댑터가 정말 많이 튀어나왔는데, LG나 삼성의 어댑터들은 그나마 제조사가 LG/삼성이니까 정리가 쉬웠는데 그렇지 않은 것들은 파악 자체가 어려우니 고민하느라 "펜딩"에 정리를 했다.
지금에서야 이번 이사를 회고해보면 이렇게 했어야 좀 더 수월했던 것 같다.
- Manage your manager: 우리 집의 이사지만, 결국 이 집의 오너이자 매니저는 아내였다. 내가 일개 PM이라면 아내는 CPO나 CEO 격이었는데, 그렇다면 제일 먼저 했어야 했던 일은 내 manager인 아내를 관리하는 일이었던 것 같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조건을 좀 더 명확하게 하고, 그 조건에 따라서 짐을 정리했어야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일을 덜 겪을 수 있었다.
- Set the Rules: 공간을 쓰는 방법, 각 공간의 용도, 짐들의 정리 규칙 등을 미리 같이 협의하고 정리했어야 했다. 초반에 그렇게 하지 않고 선조치 후보고 했다가 이리저리 일을 두 번 했던 케이스가 적지 않았다. 특히 무거운 캠핑 짐들을 여러 번 옮기다가 어깨가 빠질뻔 했다.(이건 비유가 아니라 진짜 물리적으로 빠질 뻔 했다. 난 어깨 습관성 탈구로 병무청도 거부한 사람이다.)
- Lager fisrt. small later: 이번 이사에서 여러모로 우리를 힘들게 한 일이었는데, 이사를 하는 날에는 이삿짐센터의 실수로 큰 짐보다 작은 짐이 먼저 들어왔고, 우리가 짐을 정리하는 지금도 들어와야 하는 큰 가구들을 이사를 한 다음에 구매를 결정하다보니 아직도 좀 어수선한 상태가 되어 있다.
사실 이사라는게 이렇게 제품을 만들듯이 접근해야지 잘하는 것은 아닐거다. 😄 문제는 내가 일을 할 때의 모드와 일상 생활의 모드가 너무 다르다는 점이다. 아내가 종종 "이렇게 해서 일은 어떻게 해?"라고 물어볼 때가 있는데...생각해보면 나는 일을 할 때는 일의 전체 맥락을 읽고, 기본적인 룰을 세우고, 디테일을 정리하는 식으로 접근하는데 일상 생활에서는 좀 더 그냥 하고 보는 식의 접근을 많이 하더라. 그러니 비효율적인 접근도 많고 일을 두 번, 세 번 해야 하곤 한다. 뭐든 혼자서 할 때는 '좀 돌아가면 어때? 두 번 하면 어때?'를 해도 용서가 되는데, 아내랑 같이 뭔가 하면 그렇지 않은거지. 아내는 "체력이 좋고, 힘이 좋고, 느긋하면 그냥 머리를 안 써도 되는구나"라고 감탄(과 놀림)을 할 때가 있는데 딱 그런 성향이 가장 잘 드러난게 이번 이사였다.
뭐 특별히 대단한 인사이트를 얻은 것은 아니고, 그냥 이런 메타인지가 생겼다는 점을 기록하고 싶어 글로 이렇게 남겨둔다. 😄 이제 삶에 큰 변화를 주는 이벤트가 끝났으니 다시 루틴하게 뛰고, 쇠질하고, 잘 먹고, 잘 쉬고, 깊은 생각을 하면서 루틴하게 살아가는 삶으로 다시 복귀할 시간이라 그 시작으로 이런 신변잡기성 글을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