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이 환경을 만났을 때: Context-Dependent Memory의 비밀

습관은 의지력의 문제가 아니다. 환경이 바뀌면 습관도 흔들린다. 강릉과 세종에서의 러닝 습관 변화를 통해 깨달은 것은, 습관 = 행동 + 맥락(Context)이라는 공식이다. 좋은 습관을 만들고 싶다면 의지력을 탓하지 말고 환경을 설계하자. 맥락을 통제하면 행동을 통제할 수 있다.

습관이 환경을 만났을 때: Context-Dependent Memory의 비밀

최근 몇 주 동안 강릉에서 생활하면서 매일 아침 6시 정도면 알람이 없이도 아침 햇살 때문에 잠에 깨었습니다. 그래서 일어나면 약간의 쉬운 아침 루틴을 하고 운동을 하러 나갔어요. 잘 유지되는 습관이었습니다.

이런 습관이 세종 집으로 돌아오니까 뭔가 잘 유지가 안 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인지 분석하고 정리하고 새롭게 습관 루틴을 바꿔봤습니다. 관련하여 제가 분석하고 학습하고 정리한 내용을 공유 드립니다.

습관의 진짜 정체: Context-Dependent Memory

우리는 습관을 '의지력'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학습한 바로는 뇌과학적인 측면에서 습관은 다음과 같은 수식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
습관 = 행동 + 맥락(Context)

보통 심리학에서는 이를 Context-Dependent Memory(맥락 의존 기억)라고 부릅니다. 우리 뇌는 특정 행동을 그것이 일어난 환경과 함께 하나의 패키지로 저장한다는 뜻입니다.

실험으로 증명된 사실

1975년, 심리학자 Godden과 Baddeley의 실험을 공유합니다.

  • 다이버들에게 물속에서 단어를 외우게 함
  • 물속에서 외운 단어는 물속에서 40% 더 잘 기억
  • 육지에서는 기억력 급감

우리의 습관도 이 다이버들의 기억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습관의 숨은 연결고리

제가 강릉에서 잘 지켰던 러닝 습관을 쪼개 봤습니다.

[환경(맥락)] -> [트리거] -> [행동]
침실 창문 블라인드 → 아침 햇살 → 기상
혈압약 놓는 공간 바로 옆 → 운동복 보임 → 운동복 착용
숙소 1층 로비를 나감 → 차가 보임 → 러닝할 곳으로 이동
러닝할 해변 도착 -> 러닝 트랙(자전거 도로 보임) -> 러닝

그런데 세종으로 왔더니 이렇게 바꼈습니다.

[환경(맥락)] -> [트리거] -> [행동]
침실 창문 블라인드 → 약한 아침 햇살 → 기상 (유지)
혈압약 놓는 공간 바로 옆 → 운동복 보임 → 운동복 착용 (유지)
아파트 지하 주차장으로 나감 → 차가 보임 → 러닝할 곳으로 이동 (유지)
러닝할 곳에 주차 -> 바로 옆에 스타벅스 보임 -> 커피 한 잔 하고 뛸까? -> 카페 이동
* 카페에 오니 다른 사람들이 노트북 열고 뭔가 하고 있음 -> 블로그 생각 -> 노트북 오픈
* 블로그 글 작성하고 나니 시간이 지남 -> 덥다고 느끼고 일 생각이 남 -> 러닝을 짧게만 하자(혹은 포기)

저 *표시를 한 곳이 문제를 만들더군요. 달리기하러 와놓고선 글 쓰거나 일 할 생각을 하니까 습관이 꼬인 것이었어요. 😄

습관의 재건축 시작

원칙 1: 좋은 Context들은 남긴다.

일단 저의 습관 재건축에서 집중한 지점은 좋은 컨텍스트를 남기는 것이었습니다. 아침에 적당한 시간에 깨도록 하는 트리거, 혈압약의 위치, 러닝복의 위치를 유지시켰습니다. 러닝 벨트, 러닝 모자를 욕실에 둬서 양치 후에 바로 러닝 생각을 하도록 두는 것도 유지했습니다. 이걸 쭉 나열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핵심 트리거 배치 유지
    • 욕실에 러닝 벨트나 러닝 모자를 둬서 상기시킨다.
    • 운동복은 혈압약 바로 근처에 둬서 바로 입도록 한다.
  2. 시간 앵커 고정
    • 장소가 바뀌어도 시간은 유지, 단 이 시간은 자연의 시간을 따름
    • 행동별 최대 시간을 지킴

원칙 2: 중립적인 컨텍스트는 긍정으로 바꾸는 기전을 설계한다.

사실 카페에 들어가는 행동이나 이후의 일들은 그저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카페 자리 중에는 러너들을 목격할 수 있는 자리가 많았거든요. 그래서 이런 설계를 했습니다.

저 숲길을 뜁니다.
  1. 새로운 트리거 설계
    • 카페에 앉을 때, 달리는 사람들이 보이는 자리에만 앉는다.
    • 캘린더에 러닝하는 시간을 박아둬서 일정 관리 앱에서 트리거를 쏘도록 한다.
    • 캘린더의 트리거링을 10분전, 1분전 발송으로 세팅한다.
  2. 행동 설계의 원칙
    • 글을 쓰더라도 10분전 트리거가 오면 글을 10분 안에 마무리할 수 있을지 확인한다. 만약 가능할 것 같으면 시도한다.
    • 글 쓰다가 1분 전 트리거가 오면 남은 글을 어떻게 정리할지 쭉 줄글로 정리하고 노트북을 덮는다.

결국 카페에 오는 것은 중립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여기에서 새로운 트리거를 둔 것이죠. 그리고 나아가 이런 세팅도 추가했습니다.

  1. 추가 맥락/트리거 설계
    1. 아침에 달리러 나올 때, 땀에 젖은 옷을 넣을 비닐 봉투와 새 옷들을 챙겨온다.
    2. 이는 달리기를 마치고 물을 마시러 카페에 들어와서 바로 일이나 글쓰기 모드로 전환 가능한 환경의 설계다.

핵심: 환경이 의지를 이긴다

제가 이 글을 통해 말씀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하나입니다.

💡
좋은 습관은 환경으로 만들고, 안 좋은 습관은 좋은 습관으로 덮거나 트리거 자체를 없앤다.

AC2를 하신 분들은 자주 들으셨을 이야기인데요. 이번 습관 세팅도 동일했습니다. 저는 항상 좋은 습관은 최대한 유지하고, 그 가운데 좋지 않은 습관이 비집고 들어오면 안 좋은 습관을 유발하는 환경/트리거를 분석하고 이를 없애거나 좋은 습관으로 덮어버렸습니다.

굳이 저의 의지를 탓하진 않았습니다.

저는 일할 때, 이런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의지와 다짐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면 좋겠지만, 실상 의지와 다짐이 문제를 해결할 정도로 우리의 문제가 만만하지 않아요.

저는 습관은 정말 의지의 문제라기보다 행동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한 번 본인이 생각하는 본인의 안 좋은 습관이 있다면 맥락-트리거-행동의 순서로 분석해보세요. 그러면 지금보다 충분히 더 좋은 삶을 설계할 수 있을 겁니다. 아래 3가지를 명심하세요.

  • 습관은 의지력의 문제가 아니다
  • 환경 설계가 곧 습관 설계다
  • 맥락을 통제하면 행동을 통제할 수 있다

당신이 만들고 싶은 습관이 있다면, 먼저 그 습관이 살아갈 환경부터 만들어보세요. 환경이 바뀌어 습관이 흔들린다면, 새로운 연결고리를 의도적으로 만들어보세요.

습관은 당신이 아닌, 당신을 둘러싼 환경에 의해 규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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