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빼려고 혈당 관리했는데 정작 문제는 스트레스였던 이야기

문제를 발견하면 곧바로 솔루션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대부분 실패한다. 왜일까? 문제와 솔루션 사이의 핵심 연결고리를 놓치기 때문이다. 120kg에서 104kg까지 감량하며 깨달은 것은 의미 있는 데이터 수집과 가설 검증의 중요성이었다.

살 빼려고 혈당 관리했는데 정작 문제는 스트레스였던 이야기

"살을 빼려면 혈당을 컨트롤하는게 핵심이다."

재작년 언젠가 <글루코스 혁명>이라는 책을 보고 내린 결론이었다. 그래서 한 동안 혈당 관리를 위해 혈당 지수가 낮은 음식을 먹고, 연속 혈당 측정기까지 주문했다.

정작 당시에는 혈당 측정기를 뜯지도 않았다는게 함정..

덕분에 체중의 8% 정도 감량하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이후에 여러 이유로 이 감량한 체중이 원복되었다. 이후에 우연한 기회로 <질병 해방>이라는 책을 보면서 좀 더 정확하면서도 광범위한 문제 진단을 내렸고, 지금은 성공적으로 체중을 감량하고 있다. 120kg까지 갔던 체중을 104kg 정도로 내렸고, 최근 3주는 강릉 한 달 살기 때문에 식단을 타이트하게 하지 못 했음에도 요요는 오지 않고 있다.

내가 겪은 사례를 보면, 이런 경향이 보인다.

  1. 큰 문제를 인식한다: 살이 쪘다.
  2. 뭔가 정보를 입수한다: 체중 관리의 핵심은 혈당 관리다.
  3. 솔루션을 찾는다: 혈당을 잘 관리할 수 있게 음식을 바꾸고 혈당 관리를 도울 도구를 찾는다.
  4. 솔루션을 실행한다: 혈당 관리를 빡세게 한다.

문제를 인식하고 곧바로 솔루션을 찾았다. 그 실행을 최대한 끈기 있게, 꾸준히 한다. 하지만 실상 문제와 솔루션 사이의 중요한 연결고리를 잊었다. 바로 내 상황에 맞는 문제 가설이다. 이 연결고리가 약하거나 잘못되면, 아무리 좋은 솔루션이라도 효과가 없다.

왜 엉뚱한 솔루션을 찾게 될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이런 실수를 한다. 왜 이런 실수를 하게 될까?

  • 빨리 해결하고 싶다: 지금의 상황이 문제라고는 인식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문제를 더 딥다이브하기보다는 빨리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할 것 같다. 그러니까 일단 빨리 실행할만한 '그럴듯한 정보'에 현혹된다. 특히 온라인에서 나오는 수많은 성공 사례와 팁들을 보면서 타인의 성공 공식을 그대로 따라하려 한다.

이런 솔루션 접근은 사실 개인의 삶에서도, 일터에서도 똑같이 반복된다. 문제라고 인식하는 순간, 뇌 속에서 '이건 문제야. 해결해야 해.'라는 유혹의 속삭임이 반복되니까. 😄

그런데 이런 상황을 조금 더 파고 들어가보면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

  • 문제 가설의 어설픈 탐색: 보통의 문제-솔루션 정의를 보면 빨리 해결하고 싶은 사람도 결국 나름의 문제 정의를 한다. 다만, 문제에 대한 가설이 있어도 그 가설에 대한 검증을 게을리 할 뿐이다. (혹은 이걸 검증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지식이 없거나.) 즉, 내가 정의한 문제가 맞다는 판단 하에 바로 솔루션으로 진입하는데 이는 과도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거나 뭘 잘 모르는 경우에 이렇게 한다. 나는 이런 상황은 메타인지와 역량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물론 나도 이걸 빨리 정의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를 다르게 표현하면...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다.

  • 패턴 인식 없는 즉흥적 대응: 어제 야식을 먹었다고 오늘부터 저탄수화물 식단을 시작하는 식으로, 충분한 관찰 없이 바로 행동에 나선다.

업무에서도 마찬가지다. 매출이 떨어지면 "마케팅이 문제다"라고 단정하고 광고비부터 늘리려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제품 품질이나 고객 서비스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수도 있을텐데 말이다.


나의 접근 1단계: 의미 있는 데이터 확인과 가설 수립

올바른 가설을 세우려면 먼저 의미 있는 데이터를 수집해야 한다. 여기서 의미 있는 데이터란 내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정보를 말한다.

패턴 인식: 일단 문제 가설을 버리고 관찰하기

체중 감량 예시로 돌아가보자. 단순히 "살이 쪘다"가 아니라, 어떤 이벤트가 있어서 살이 쪘는가?를 봐야 한다.

예를 들어서 나는 이렇게 접근했다.

  1. 2024년의 체중 추세를 확인한다: 나는 스마트 체중계를 써서, 측정한 체중이 애플 건강 앱으로 전송하게 했다. 그래서 매일 체중을 확인하는 루틴이 있기에 애플 헬스로 기록된 체중이 어떤 시점부터 감량에서 오르는 추세로 바꼈는지 확인했다.
  2. 운동 기록/식단 기록을 확인한다: 나는 웨이트를 할 때는 fleek이라는 앱을 썼고, 유산소는 그냥 애플워치에 운동을 기록했는데..그 기록들의 추이를 봤다. 그리고 한창 감량을 할 때는 식단 일지를 필라이즈에 기록했는데 그 기록들을 봤다.
  3. 체중 추세와 운동/식단 기록의 추세를 서로 비교한다: 보니까 체중의 변화가 시작되는 시점, 즉 감량이 멈추고 살이 찌기 시작하는 시점부터 식단 기록의 빈도가 굉장히 띄엄띄엄하게 기록되었음을 확인했다.
이런 데이터들을 본거다.

가설 수립: 버려도 되는 가설을 세우고 부수기

기록들을 다 확인하면서 가설을 하나 세웠다.

💡
나는 식단 기록을 멈추면 식단 관리가 잘 안 되어서 체중이 늘어난다.

보통은 여기에서 문제를 정의해버리면 식단 기록을 잘하는 방법을 찾게 된다. 각종 앱을 검색하고 더 쉬운 기록을 고민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분명히 이 시점에 내가 식단 기록을 멈추게 만드는 트리거가 더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분명히 체중도 잘 감량하고 있었고, 식단에 잘 적응하고 있었다.(참고로 나는 같은 메뉴로 3달 정도를 먹어도 별 타격이 없는 인간이다.)

그래서 다시 데이터들을 확인해봤다.

  1. 구글 캘린더를 보면서 내 일정들을 확인한다: 나는 보통 구글 캘린더에 모든 이벤트를 기록하는 편인데(개인 일정까지도) 이걸 보면서 식단 기록 빈도가 주는 시점의 이벤트들을 다 확인해봤다. 그 이벤트들을 보니 생각이 났다. 팀에서 잘 설득이 안 되는 PO를 설득하느라 멘탈 에너지를 엄청 써야 했던 순간들이.
  2. 주변인과 이 상황을 이야기한다: 이건 내 메타인지가 어느 정도 안 될 경우를 대비하는 것이다. 😄 여기까지 정보를 습득한 나는 아내랑 짧게 이야기를 나눴다. "이러이러해서 이랬던 것 같은데?"라는 말을 했더니, 아내가 이런 이야기를 해줬다. "아..맞아. 그래서 당신 그 때 스트레스 쌓여서 좋아하는 음식들 먹으러 외식을 좀 자주 했던 것 같아." 유레카다.

이 시점에 다시 문제를 조합하기 시작했다. 앞서 얻은 데이터에 기반해서 문제에 대한 추상화 된 생각을 정리했다.

💡
나는 회사의 일이 특정 수준 이상의 스트레스 상황이 되면, 일시적인 스트레스 회복을 위해 좋아하는 음식(하지만 건강하지 않은 음식)을 찾고, 그런 음식을 먹은 죄책감에 식단 기록도 드물게 해버린다.

자 여기서 문제가 바꼈다. 선행 지표부터 후행 지표까지 하나씩 연결되기 시작한다.

  • 회사에서 스트레스 발생 -> 스트레스가 한계 이상으로 올라감 -> 스트레스의 즉각적인 해소를 위한 식사 -> 죄책감에 식단 기록 드물게 함 -> 살 찐다.
이런 느낌인거죠...

그렇다면 이제 이 도미노를 잘 끊어야 한다. 나는 여기서 어느 지점에서 도미노를 끊을지를 고민했고, 결론은 두가지였다. 첫째,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덜 받도록 미리 정리한다. 둘째, 내가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이를 잘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정하고 실행한다.

회사에서 스트레스 덜 받게 만드는 방법은 후순위로 미뤘다.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작은 불편함을 피한 대가>라는 글에도 썼지만..비는 내가 통제할 수 없지만, 비를 맞으며 뛸지 말지는 내가 통제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2단계: 가설 검증을 위한 의미 있는 정보 탐색

가설을 세웠다면 이제 의미 있는 정보를 탐색해야 한다. 여기서 의미 있는 정보란 내 가설이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는 근거와 검증된 솔루션을 뜻한다.

AI를 활용한 신뢰할 수 있는 지식 원천 활용

단순 구글링이나 블로그 포스팅이 아니라:

  • 학술 연구나 전문 기관의 자료
  • 유사한 조건에서 검증된 사례
  • 전문가의 체계적인 분석

스트레스-식욕 연관성 가설이라면 스트레스와 식욕에 대한 의학 연구 결과를 찾아보고, 실제로 스트레스 관리를 통해 체중 조절에 성공한 체계적인 방법론을 탐색해야 한다. 나는 이런 의미 있는 정보를 찾는 과정에서 AI를 전략적으로 활용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AI에게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좋지 않은 AI 활용: "스트레스 관리 방법 알려줘" (너무 일반적) "혈당 관리법 추천해줘" (가설 검증 없이 솔루션부터 요구)

효과적인 AI 활용: "40대 남성이 스트레스 발생으로 인해 식욕이 너무 크게 증진되는 상황을 개선하려고 합니다. 스트레스가 식욕에 영향을 영향을 끼치는 여러 메커니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과학적 근거를 찾고 있습니다. 관련 연구나 검증된 방법론을 알려주세요."

이처럼 구체적인 맥락과 함께 질문하면:

  • 내 상황에 맞는 정보를 얻을 수 있고
  •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요청할 수 있으며
  • 후속 질문으로 더 깊이 파고들 수 있다

AI는 여러 정보 소스를 종합해서 패턴을 찾는 데도 유용하다. "A 연구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B 연구에서는 저렇게 말하는데,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해달라"는 식으로 활용하면 더 입체적인 관점을 얻을 수 있다.

이 단계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이득은 "후속 질문으로 더 깊이 파고들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서 나는 이 단계에서 스트레스의 발생과 관리에서 크게 3가지 정보를 얻었다.

  • 첫째, 수면과 같은 필수 활동이 스트레스 관리, 식욕 관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당시 나는 평균적으로 6시간의 수면을 취했는데, 7시간 이상의 수면을 취하는 것의 이득을 보다 더 잘 알게 되었다.(물론 잠은 오랜 기간 습관처럼 생긴 것이라 더 늘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 둘째, 스트레스를 보다 더 잘 관리할 수 있는 운동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2024년에 스트레스가 심하던 시점에는 웨이트 트레이닝 중에서도 스트랭스 훈련에 심취했는데, 이것보다는 유산소 운동(특히 러닝)이 스트레스 관리에 더 좋다는 정보를 얻었다.
  • 셋째, 먹고 싶은 음식을 먹어서 즉각적으로 보상을 얻는게 실제로는 스트레스 관리에 좋지 않음을 확인했다. 내가 좋아하는 간짜장이나 탕수육을 먹어봤자라는 결론이었다.

3단계: 솔루션 수립과 실행, 그리고 검증

이제 본격적으로 내 상황에 적용 가능한 솔루션을 찾기 시작했다. "스트레스 관리가 중요하다"는 일반론을 넘어서 "내 생활 패턴에서 스트레스를 관리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방법"을 찾는 것이 핵심이다.

예를 들어서 나는 이런 일을 시작했다:

  • 수면을 일찍 시작하고, 수면의 질을 높이기 위해 운동과 식사 시점을 결정함
  • 스트레스의 관리에 도움이 더 될 수 있는 러닝을 시작함(대체품 로잉)
  • 보다 지속 가능한 식단을 하기 위해 저속 노화 식단 중에서도 내가 더 버틸 수 있는 식단을 시작함
  • 러닝만으로 스트레스가 충분히 해결되지 않는 순간에는 원래 하고 있던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러 감(일종의 간식 같이)

그리고 이걸 루틴화 하기 시작했다.

  • 아침에 일어나면 화장실 -> 양치 -> 혈압약 -> 건강 보조식품 -> 바나나 -> 칸트 산책 -> 러닝(혹은 로잉머신)으로 이어지는 루틴을 수행한다.
  • 러닝을 마치고 샤워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업무를 시작한다.
  • 점심 식사는 저속 노화 식단(정희원 교수가 햇반이랑 콜라보 해서 만든 밥이 있다.)을 중심으로 하되, 단백질 공급원을 확보한다.
  • 점심을 먹고 나면 산책을 하고, 디카페인 커피를 한 잔 마신 다음에 오후 업무를 시작한다.
  • 저녁 식사는 6시에 최대한 시작해서 6시 30분에는 마친다.
  • 수면 2시간 전에, 수면의 질을 좀 더 높이기 위한 건강 보조식품(마그네슘, 트립토판, L-티아닌 등)을 먹고 스마트폰은 수면용 화면 조명으로 바꾼다.
  • 11시에는 잔다.

솔루션을 실행한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다.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가설 검증을 위한 실험적 접근이다.

내가 한 모든 활동들이 체중 감량에 도움이 된다는 가설을 검증하려면:

  • 2주간 수면 시간을 늘려보고 식욕이 터지는 빈도 변화 관찰
  • 체중뿐 아니라 식욕, 에너지 수준 등도 함께 추적
  • 다른 변수들은 최대한 동일하게 유지

나는 여기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이 "다른 변수들은 최대한 동일하게 유지"였다. 사실 지금 나는 운동/식사/수면 3가지를 동시에 건드리다보니 변수가 이미 3개나 되는 상황이어서 변인 컨트롤 자체가 쉽지 않게 판을 만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의 에너지나 스트레스를 일단 점수로 매기는 활동을 최대한 길게 이어갔다.

마무리: 조급함을 버리고 한 발 뒤로

문제를 발견하면 빨리 해결하고 싶은 마음은 당연하다. 하지만 성급하게 솔루션부터 찾으면 오히려 더 큰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할 수 있다.

문제 인식 → 데이터 수집 → 가설 수립 → 정보 탐색 → 솔루션 실행

이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가는 것이 결국 가장 빠른 길이다. 특히 의미 있는 데이터와 의미 있는 정보를 구분해서 접근하는 것이 핵심이다.

다음에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솔루션을 찾기 전에 먼저 물어보자: "내가 정말 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충분히 알고 있는가?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한 내 가설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있는가?"

이 질문에 명확하게 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의미 있는 솔루션을 찾을 수 있다.

Read more

Align의 3가지 체크 요소 - 지표, 기준, 그리고 조직

Align의 3가지 체크 요소 - 지표, 기준, 그리고 조직

제가 일하면서 챙기는 여러 가지 중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Alignment(정렬)입니다. 내가 하는 일이 회사 목표와 연결되어 있는지, 산출물의 기준은 명확한지, 다른 팀과의 협업 구조는 원활한 협업이 가능한 구조인지. 특히 조직 간 이해 충돌을 Win-Win으로 만드는 것이 핵심입니다. 좋은 사람을 갈아서 일하지 말고, 구조를 개선해야 합니다.

By Changyeong Ahn
뭘 '안 하는 것'의 어려움

뭘 '안 하는 것'의 어려움

전략은 뭘 하느냐가 아니라 뭘 하지 않느냐에 달려있다. 하지만 이를 실천하기는 정말 어렵다. 특히 수평적 조직에서는 모두가 '신호'를 캐치했다고 주장하지만, 의사결정권자에게는 신호와 소음이 뒤섞여 들어온다. 가장 어려운 것은 실행이다. 선택과 집중을 잘하려면 결정 과정의 합리성, 목표의 정렬, 그리고 성과 인정 체계를 살펴봐야 한다.

By Changyeong Ah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