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책임질게요"라는 말의 무게
"의사결정의 순간, '책임지겠다'는 말의 무게를 생각해본 적 있나요?" PO로서 매일 반복되는 의사결정, 정보 부족 속에서도 내리는 선택, 그리고 그 선택에 책임지는 방식에 대한 솔직한 기록입니다. 제품을 만드는 모든 분께 도움이 될 이야기입니다.
PO의 일은 결국, 책임 있는 의사결정의 연속입니다.
오늘도 PO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제품을 만드는 일 그 자체보다, ‘어떻게 결정하고 책임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PO분들에게는 이 글이 조금은 더 나은 하루를 보내기에 도움이 될 겁니다.
"당신보다 똑똑한 사람이 지금 이 일을 맡는다면?"
며칠 전, 제 아내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오빠가 하는 일을 내가 바로 해야 한다면, 나는 어떤 걸 오빠보다 못할까?”
제 아내는 글로벌 제약사와 국내 대기업을 거친 전략가입니다. 저보다 훨씬 뛰어난 지적 역량을 가진 사람이죠. 그래서 이 질문은 이렇게 들렸습니다:
“너보다 더 똑똑한 사람이 PO 일을 한다면, 너는 어떤 점에서 여전히 더 잘할 수 있을까?”
잠시 생각한 끝에 떠오른 건 이것이었습니다.
“의사결정의 퀄리티는 단기간에 따라오긴 어렵다.”
지적 역량보다 맥락에 대한 이해, 순간의 판단력, 그리고 일관된 결정의 축적이 PO의 진짜 경쟁력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재밌죠? 더 똑똑한데, 더 못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지적 역량이 꽤 영향을 주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저는 여전히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제가 저보다 Product Managing을 못하는 PO가 맡고 있는 제품을 맡더라도 똑같을 겁니다.
왜냐 하면 PO는 매일 크고 작은 의사결정을 꽤나 잘 해야 하고, 그 의사결정을 빨리 하면서도 퀄리티를 일정 수준 이상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의사결정을 짧은 시간 안에 일정 수준 이상으로 반복적으로 잘 하기 위해서는 제품을 둘러싼 여러 맥락(비즈니스, 고객, 팀, 이미 만들어진 제품)을 잘 고려해서 그때그때 결정을 해야 하기 때문이죠. 결국은 맥락(context)에 대한 풍부한 이해가 없다면 좋은 의사결정을 단기에 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도 제가 처음 맡는 제품의 초기 의사결정들은 잘못된 것들이 많았습니다. Toss에서도 야놀자에서도, 지금 일하는 레몬베이스에서도 그랬습니다.
PO의 핵심은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의사결정
PO는 매일 크고 작은 결정을 반복합니다.
그 결정 하나하나가 제품의 방향을 만들고, 팀의 속도를 정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결정은 시간과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내려야 할 때가 많습니다.
저는 이런 상황에서 자주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지금 이 결정을 내릴 만큼 정보가 충분한가?”
“아니라면, 더 정보를 모을 수 있는가?”
“아무리 자원을 써도 정보가 더 이상 늘지 않는 ‘임계점’에 도달한 건 아닐까?”
이 임계점 이후의 결정은, 더 이상 분석의 영역이 아닌 ‘선택의 영역’이 됩니다.
이때부터는 ‘내가 책임질게요’라는 말이 등장할 순간입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임계점"입니다. 보통 팀이 뭔가를 정할 때, 그 근거가 되는 정보들을 수집합니다. 초반에는 시간과 에너지를 쓰면 정보를 수집하고 정리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어느 시점에는 정보 수집에 시간과 에너지를 아무리 쓰더라도 더 이상 수집된 정보의 양과 질이 더 올라가지 않는 순간이 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고민의 순간에 Information Score X Resource 그래프를 그려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정보를 모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시간이 부족해서 정보를 수집하기 어렵거나, 자원을 더 투입하더라도 정보의 양과 질이 올라가지 않는 순간을 만납니다. 바로 수확 체감의 순간이죠.
이 지점 이후의 선택은 "더 알아보고 결정하자"가 아니라, “지금 정해야 한다”는 현실과 마주하는 일입니다.
이 지점이 바로 PO의 역할이 가장 명확히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결정보다 더 어려운 순간: 확신 없는 동의
하지만 이 때, 보통 우리는 이런 어려움을 겪습니다.
진짜 어려운 건 이럴 때입니다.
- PO는 A안이 맞다고 생각함.
- 팀원들은 A안에 대해 확신은 없음.
- 그런데 B안도 없고, A안이 틀렸다는 근거도 없음.
- 그 와중에 반론 전문가(!)는 A안의 리스크만 계속 지적함.
결론은 보통 이렇습니다:
“다른 대안은 없지만, 이것도 확실하진 않다.”
이럴 때 PO는 흔히 말하죠:
“제가 책임질게요. A안으로 가요.”
이 순간의 의사결정은 단지 방향 설정이 아니라, 관계와 신뢰에 대한 선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말이 진짜가 되려면, 말 이후의 행동이 달라야 합니다.
“제가 책임질게요”라는 말의 실제 의미
많은 PO가 이 말을 합니다. 저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문득 궁금했습니다.
“책임을 진다는 건 정확히 뭘 의미하지?”
“실제로 나는 어떻게 책임지고 있지?”
생각 끝에 정리한 ‘PO로서의 책임’에 대한 저의 정의는 아래와 같습니다.
- 결정의 결과를 책임지고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것.
- 결정이 틀렸다면, 그 원인을 냉정하게 분석하는 것.
-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다음 결정에 반영하는 것.
PO가 어떤 결과 앞에서 “내가 틀렸구나”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 “제가 책임질게요”에 설득력이 생깁니다.
PO가 기억해야 할 4가지 질문
- 정보가 충분했거나 충분하게 만들 수 있음에도, 불필요하게 의사결정으로 만든 건 없었나?
- 최근 3개월 간 내 결정들의 결과는 어땠는가?
- 성공한 결정과 실패한 결정의 차이는 무엇인가?
- 내 권한에 맞는 책임의 범위는 무엇인가?
PO는 제품을 만들기도 하지만, 매일 ‘불확실한 선택’을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PO는 누구보다 자신에게 이런 말을 물어야 합니다.
“내가 지금 하려는 말, 진짜 책임질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