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력의 역설: 왜 매일이 매주보다 쉬울까?
왜 매주 한 번보다 매일 하는 게 더 쉬울까? 31일 동안 매일 블로그를 쓰면서 발견한 의지력의 비밀. 미룰 수 있는 여유가 있으면 미루게 되고, 완벽해야 한다는 부담이 시작을 막는다. 하지만 '오늘뿐'이라는 제약과 '가볍게라도'라는 마음가짐이 만나면, 놀라운 꾸준함이 만들어진다

최근 한 달 동안 나 스스로도 놀랄 만한 일을 해냈다. 5월 1일부터 31일까지, 총 31개의 블로그 포스팅을 올린 것이다. 31일 중 하루는 2개, 하루는 0개, 나머지 29일은 1개씩 올려서 총 31개의 포스팅을 올렸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몇 달 동안 "매주 하나씩 포스팅하기"라는 더 쉬워 보이는 목표는 번번이 실패했다. 매달 회고와 목표 수립 관련한 포스팅이 전부였으니, 주 1회라는 목표에는 한참 못 미쳤다.
왜 더 어려워 보이는 '매일'이 더 쉬운 '매주'보다 잘 지켜졌을까?

뒤로 물러날 곳이 없을 때
사실 "매주 한 번"이라는 목표에는 함정이 있었다. 평일에는 "주말에 쓰자"고 생각했고, 토요일이 되면 "일요일에 쓰자"고 미뤘다. 사실 가장의 주말은 언제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하는 순간이 생기기 마련이라 미뤄지기 딱 좋았다. 뭐랄까..일주일이라는 시간은 언제나 "더 좋은 순간과 기회"가 있을 것 같은 착각을 만들어냈다.
반면 "매일"은 달랐다. 오늘 안 쓰면 실패다. 단순하고 명확했다. 미룰 곳이 없었다. 마치 배수진을 치고 싸우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물론 이 부담이 너무 심했다면 또 실패했을 것이다. 부담감에 사로잡혀서 무너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적당한 부담감은 오히려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만들어줬다.
완벽주의의 역설
주 1회 포스팅에는 또 다른 부담이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뿐인데 잘 써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어쨌든 블로그를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용도로 쓴다면 잘 써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크게 들었다. '성심당 빵 top 5'같은 주제도 물론 좋겠지만, 이건 꼭 내가 만들어야 하는 주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매주 주제 선정부터 고민이 시작됐다. "더 좋은 주제가 있을 거야"라는 생각에 결정을 미뤘고, 막상 쓰려고 하면 "제대로 된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이 시작을 가로막았다.
매일 쓸 때는 달랐다. "오늘은 가볍게라도"라는 마음이 가능했다.(그렇다고 가볍게 쓴 글이 많진 않다. 내 글의 평균 길이는 1000word를 훌쩍 넘는다.) 오늘 있었던 일, 지금 떠오른 생각으로도 충분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안 되면 내일 또 쓸 테니까. (1) (그리고 Claude랑 함께 글을 쓰기 때문에 더 쉬워진 것도 있다.)
달리기에서도 발견한 같은 원리
이 원리는 블로그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달리기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주 3회 달리기보다 주 4회 달리기가 더 잘 지켜졌다. 물론 이는 습관화 되는 것이 주는 힘도 있을 것이다.
주 3회는 "오늘 안 뛰어도 이번 주에 기회가 더 있어"라는 여유가 조금은 있다. 어떤 식으로든 하루 걸러 하루 뛰기를 할 수 있다. 반대로 주4회는 러닝과 회복까지를 감안한다면 한 번 틀어지면 꽤나 고통스럽게 된다.
즉, 한 번 틀어질 때의 비용이 지금 안 뛸 때의 효용보다는 더 크다는 사실은 인식한 시점부터 "이틀에 한 번은 무조건"이라는 강제성을 만들었다. 여유가 있을 때보다 빡빡할 때 더 잘 지켜지는 역설이었다.
의지력이 더 잘 작동하는 조건들
이런 경험들을 통해 스스로 정리한 의지력 발현의 조건은 이렇다.

- 탈출구(도망칠 곳)를 없애서 선택지를 줄인다: 미룰 수 있는 여지가 있으면 미루기 쉽다. 오늘 뿐이라는 절박함이 행동을 만들 수 있다. 또한 이런 절박함이 고민을 줄인다. 오늘 할까 말까하는 고민의 틈을 만들지 않는다. 매일 하는 것은 선택이 없어지는 셈이고, 당연한 일상이 되어서 더 편해진다.
- 기대치를 낮춘다: 매번 인사이트가 충만한 글을 쓸 수는 없다. 매번 내 pb를 세우는 달리기를 할 수 없다. 때론 똥글을 쓰기도 하고, 8분대 페이스로 달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 꾸준함이 결국 내 인생이라는 마라톤에 가장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하루하루의 pb를 만들려고 애쓰지 않는다.
- 원래 잘하고 있던 습관에 묶는다: 이건 AC2(2)에서 배운 좋은 습관 만들기의 요령을 적용한 것이다. 의지보다는 환경과 루틴을 만든 셈인데, 나는 이번 한 달 동안 글쓰기를 내가 매일 하는 루틴 혹은 환경에 묶어버렸다. 강릉에서 일하는 날은 아침에 일어나서 혈압약 먹고 강아지 산책 시키고 러닝을 한 다음에 집에 들어오기 전에 동네에 있는 카페에서 글을 쓰고 들어왔다. 서울로 출퇴근을 하는 날에는 아침에 기차를 타는 1시간 40분이라는 시간을 활용했다. 이것도 성공에 큰 요인이었다. 일상에 잘 녹인 셈이다.
마치며..
심리학에서는 이런 제약들을 주는 것을 '창의적 제약(creative constraints)'이라고 부른다. 선택지가 너무 많으면 오히려 결정을 못 내리고, 제약이 있을 때 더 집중하고 실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의지력은 협상의 여지를 줄일수록 더 강해진다. 자신과의 타협점을 만들지 않을 때 오히려 실행이 쉬워진다. "적당히"보다는 "매일"이, "여유 있게"보다는 "빡빡하게"가 더 지속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흔히 목표를 세울 때 "현실적으로" 접근하려 한다. 주 7회가 부담스러우니 주 3회로, 매일이 어려우니 매주로. 하지만 내 경험은 정반대가 더 잘 되던데?를 말하고 있다. 물론 모든 케이스에 내 경험이 다 워킹하진 않을 것이다. 당연히 안 되는 경우도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몇가지 일들은 더 높은 목표가 더 쉬운 길을 만들어 준다고 생각한다. 뒤로 물러날 곳을 없애고, 선택의 고민을 제거하고, 그저 오늘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그것이 의지력을 가장 잘 발휘하는 방법이었다.
만약 무언가를 꾸준히 하고 싶다면, "적당히" 하려 하지 말고 "매일" 해보는 건 어떨까? 역설적이지만, 그것이 더 쉬운 길일 수도 있다.
(1) 안 되면 내일 또 쓰면 된다고 생각해서 약간 나이브하게 쓴 글을 고치는 것이 잘 안 되긴 한다. 이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을 정리해서 글로 만들어보겠다.
(2) AC2는 최근 새로운 배치를 모집하기 시작했다. 관심이 있는 분들은 꼭 신청해서 해보시기 바란다. 인생이 바뀌는 좋은 경험을 하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