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로그와 로드맵 사이에서: B2B SaaS PM의 균형 찾기

B2B HR SaaS를 관리하며 느낀 백로그와 로드맵의 괴리. 백여 개의 고객 요청은 쌓여가는데 정작 로드맵은 AI 혁신으로 가득하다. 이 'Innovation vs. Iteration Gap'을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고민의 기록을 공유 드립니다.

백로그와 로드맵 사이에서: B2B SaaS PM의 균형 찾기

들어가며

B2B HR SaaS 제품을 관리하면서 늘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불편함이 있었다. Jira를 열 때마다 백여 개의 백로그가 쌓여있는 것을 보면서도, 정작 분기별 로드맵 리뷰에서는 이 백로그들이 잘 언급조차 되지 않는 현실이다.

"나는 정말 고객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걸까?"

이 질문은 단순한 의구심을 넘어, 제품 조직 전체의 방향성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으로 이어졌다.

두 개의 렌즈로 보는 제품

문제의 핵심은 우리가 제품을 바라보는 '두 개의 렌즈'에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첫째, 전략적 렌즈 :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묻는다. AI 기반 OO 어시스턴트처럼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혁신적 기능들이 여기에 속한다. 경영진이 기대하는 것도, 투자자가 주목하는 것도 바로 이 렌즈를 통해 보이는 미래다.

둘째, 운영적 렌즈 : "고객이 지금 겪는 문제는 무엇인가?"를 묻는다. 예를 들어서 특정한 승인 요청을 했다가 취소하고 버튼이 없어서 고객성공팀에 연락해야 하는 불편함, 반려할 때 사유를 입력할 수 없어서 따로 메일을 보내야 하는 번거로움 같은 이런 작은 마찰들이 쌓여 만드는 일상적 불만족이 여기에 속한다.

B2B HR SaaS의 특성상 이 괴리는 더욱 심화된다. HR 담당자들은 매일 세세한 워크플로우 문제와 씨름하지만, 우리가 그리는 로드맵은 어쩌면 더 전략적이라고 생각되는 이니셔티브들으로 가득 차 있다.

혁신과 개선 사이의 간극

이 현상을 "Innovation vs. Iteration Gap"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흥미로운 발견은 이 두 가지가 서로 다른 가치를 창출한다는 점이었다. 백로그의 작은 개선들은 즉각적인 고객 만족도를 높이고 이탈을 방지한다. 특히 B2B에서는 작은 불편 하나가 계약 갱신의 변수가 될 수 있다. 반면 로드맵의 혁신적 기능들은 경쟁 우위를 만들고 신규 고객을 유치한다.

그렇다면 이 둘은 정말 양립할 수 없는 것일까?

Value Stream으로 연결하기

여러 고민을 하다보니, 같은 사용자 워크플로우를 다른 각도에서 개선하려는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목표 관리 프로세스를 예로 들어보자:

  • AI 어시스턴트는 "목표 수립" 단계를 혁신한다
  • 백로그의 승인/반려 기능에서 "검토" 단계를 개선한다

결국 둘 다 "더 나은 목표 수립 및 승인 경험"이라는 큰 범주로서는 동일한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백로그와 로드맵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관계가 된다. 물론 시간이라는 관점에서는 결국 고민이 남을 것임을 알고 있다.

HR의 계절성

HR SaaS만의 특별한 리듬이 있다. 목표 수립 시즌, 중간 점검, 연말 평가. 이 주기적인 피크 시즌이 있다. 해서 위의 Value Stream의 연결에 더해서 "Seasonal Value Mapping"이라는 접근법을 구상해봤다. 각 시즌에 맞춰 Epic을 구성하고, 그 안에 전략적 기능과 운영적 개선을 함께 배치하는 것이다. 고객 입장에서는 "아, 목표 시즌에 이런 개선이 되는구나"라고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고, 제품 조직도 명확한 컨텍스트 속에서 일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 Quick Win을 더해보자.

마지막 고민은 제품 개선 사항이 대부분 규모가 좀 큰 것들을 중심으로 한다는 점이었다. 평가가 끝나고 목표를 수립한 직후, 사용량이 폭증하면서 피드백도 쏟아진다. 나는 이 시기를 "Post-Peak Feedback Surge"라고 부르는데, 이 시점에는 정말 자잘한 피드백이 많이 나온다.

이 시점에 최대 7일 이내에 해결 가능한 개선 사항을 집중적으로 처리하는 Quick Win Sprint를 기획했다. 고객에게는 "여러분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엄청 많은 개선사항을 짧은 시간에 개선하는 것으로 "쟤네가 내 목소리를 듣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가지고, 신뢰를 쌓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PM/PO가 직접 고객을 만나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것만으로도 고객이 "이 회사는 내 목소리를 제대로 들을 준비를 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현실과의 타협

그런데 현실은 늘 이상과 다르다. 최근 경영의 상황에 맞춰서 로드맵을 검토하면서, 앞서 논의한 모든 전략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했다. 생존을 조금 더 우선하는 모드로 전환하는 상황에서는 혁신보다는 안전한 안타들을 쳐야 했다. 이때 깨달은 것은, 때로는 백로그의 작은 개선들이 회사를 살리는 생명줄이 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대신 이 백로그들 중에서 약간의 추가만으로 혁신에 가까워지는 것들의 우선순위를 높였다.

80%의 리소스를 고객 유지에 집중하기로 했다. 화려한 AI 기능 대신 "목표 승인 취소 버튼" 하나가 더 중요한 시기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극단적 상황이 오히려 백로그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해주었다.

배운 것들

이 여정을 통해 얻은 핵심 인사이트들:

  1. 백로그와 로드맵은 대립이 아닌 보완 관계다. 같은 가치를 다른 시간축에서 추구할 뿐이다. 그러므로 이들을 대립 관계가 아니도록 세팅하는게 중요하다. 같은 Value Stream의 다른 시점이나 워크플로우를 개선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잘 묶어줘야 한다.
  2. 작은 개선의 누적이 큰 혁신만큼 중요하다. 특히 B2B에서는 일상의 마찰을 줄이는 것이 고객 유지의 핵심이다. 오래 쓸수록 불편한 제품, 많이 쓸수록 불편한 제품이 되어선 안 된다.
  3. 타이밍이 중요하다. HR의 계절적 특성을 활용하면 같은 노력으로 더 큰 임팩트를 만들 수 있다. 그 계절성을 역으로 활용해서 Seasonal Value Mapping을 통해 영리하게 계획을 세워야 한다.
  4. 고객과의 소통은 기능보다 중요하다. 평가 후, 목표 수립 후 등등 Post-Peak Feedback Surge 시기의 Quick Win 전략이 중요한데, 특히 그 시기를 PO/PM이 고객을 직접 만나야 한다. 그 시기가 고객의 인상을 좌우한다.
  5. 상황에 따라 유연해야 한다. 평시의 전략과 위기의 전략은 달라야 한다.

마치며

제품 관리는 결국 균형의 예술이다. 미래를 그리면서도 현재를 놓치지 않고, 혁신을 추구하면서도 안정성을 지키는 것. 백로그와 로드맵의 괴리는 사실 이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긴장이었다.

중요한 것은 이 긴장을 해소하려 하기보다는, 생산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백로그의 작은 목소리들이 모여 로드맵의 큰 방향을 만들고, 로드맵의 비전이 백로그의 우선순위를 가이드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항상 고객의 일상 속 불편함을 잊지 않는 것. 때로는 AI보다 버튼 하나가 더 가치 있을 수 있다는 겸손함을 유지하는 것. 우리의 제품이 만드는 변화는 거창한 혁신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매일의 작은 개선들이 쌓여 만드는 신뢰, 그것이 B2B SaaS의 진정한 경쟁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은 B2B HR SaaS Product Manager로서의 실제 경험과 고민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조직에서는 백로그와 로드맵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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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gn의 3가지 체크 요소 - 지표, 기준, 그리고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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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하면서 챙기는 여러 가지 중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Alignment(정렬)입니다. 내가 하는 일이 회사 목표와 연결되어 있는지, 산출물의 기준은 명확한지, 다른 팀과의 협업 구조는 원활한 협업이 가능한 구조인지. 특히 조직 간 이해 충돌을 Win-Win으로 만드는 것이 핵심입니다. 좋은 사람을 갈아서 일하지 말고, 구조를 개선해야 합니다.

By Changyeong Ahn
뭘 '안 하는 것'의 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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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은 뭘 하느냐가 아니라 뭘 하지 않느냐에 달려있다. 하지만 이를 실천하기는 정말 어렵다. 특히 수평적 조직에서는 모두가 '신호'를 캐치했다고 주장하지만, 의사결정권자에게는 신호와 소음이 뒤섞여 들어온다. 가장 어려운 것은 실행이다. 선택과 집중을 잘하려면 결정 과정의 합리성, 목표의 정렬, 그리고 성과 인정 체계를 살펴봐야 한다.

By Changyeong Ah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