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에서 출발한 ICP 정의, 그리고 미완의 검증
2024년 2월, B2B SaaS의 ICP(Ideal Customer Profile) 가설을 수립했습니다. 4주간 팀원들과 치열하게 논의하고, 노션 문서에 3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죠. 문제 중심으로 접근한 JTBD 방식의 가설은 완벽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저는 그 가설을 검증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당면한 문제들에 치여 ICP 검증은 계속 미뤄졌고, 결국 그 열정적인 시작은 조용히 묻혔습니다. 이제 그 실패를 돌아봅니다.

이 글은 2024년에 시도했던 <B2B SaaS ICP 찾기>의 실패기의 초입입니다. 결국 저는 이 시점에 ICP 찾기에 실패했고, 이 실패를 뼈아프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이렇게 세운 가설을 엄밀하게 검증하는 것을 '시도조차 못 했다'가 더 정확하겠네요. 오늘은 가설 수립의 여정을 공유 드립니다.
ICP(Ideal customer Profile)
Ideal Customer Profile, ICP는 특정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할 때 가장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그 결과로 기업에 가장 큰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고객의 특성을 상세히 기술한 것입니다. 이 프로필은 자신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가장 필요로 하는 고객이 누구인지를 파악하고, 마케팅과 영업 전략, 고객 지원을 그들에게 맞춤화하여 효과적인 선택과 집중을 가능하게 한다고 합니다.
통상적으로 ICP를 만들 때, 고려할 요소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B2C 제품에서는 아래와 같은 특성들이 기준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 인구 통계학적 특성: 나이, 성별, 직업, 교육 수준과 같은 기본적인 정보입니다.
- 지리적 위치: 고객이 사는 지역, 도시 또는 국가 등의 위치 정보입니다.
- 심리적/행동적 특성: 고객의 선호, 가치관, 구매 습관,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 등과 같은 개인의 심리적 특성이나 행동 패턴입니다.
- 경제적 상태: 고객의 소득 수준, 구매력 등의 경제적 조건입니다.
- 사용 상황: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하는 상황, 시간, 빈도 등의 조건입니다.
하지만 위의 5가지 기본 항목들은 B2C 서비스의 속성에 가깝습니다. 물론 B2B SaaS 비즈니스의 buyer persona를 규정한다면 위의 속성들이 맞을 수 있지만, 기업의 구성원은 결국 기업의 속성에 더 큰 영향을 주기에 조금 다른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ICP for B2B SaaS
B2B SaaS 제품의 ICP를 도출할 때는 다음의 항목들을 고민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산업 속성: SaaS 서비스가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거나 운영을 개선할 수 있는 산업 또는 니치한 산업 속성이 존재합니다. SaaS 제품들은 보통 기업의 아주 특수한 문제로 접근하기 쉽습니다. 이런 문제를 겪게 만드는 산업의 속성들을 놓치면 안 됩니다.
- 회사 규모: B2B SaaS는 고객 내 특정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이 문제는 고객의 workflow와 연결됩니다. 이런 workflow에 영향을 주는 항목 중 하나가 인원 규모입니다.
- 지리적 위치: 한국 기업이 국내에 있는 고객만을 대상으로 서비스할 경우 지리적인 위치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글로벌향의 서비스라면 답이 달라집니다. 우리가 해결할 문제를 더 많이 겪을 수 있는 국가 혹은 국내의 고객과 유사한 속성을 가진 고객들이 어느 나라에 있는지 추정해야 합니다. 물론 언어 지원, 현지화 및 법적 규정과 같은 요소를 고려하세요.
- 구매 의사 결정자: 고객사에서 우리 제품을 이용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사용자, user)와 이 SaaS 제품의 구매를 결정하는 사람(buyer, 구매 의사 결정자)가 따로 있습니다. 보통 구매 의사 결정권자들은 상위 직급이나 직책을 맡은 사람이 많죠. 그래서 사용자들이 겪는 문제를 구매 의사 결정자들은 겪지 않을 수도 있으니 이에 대한 고려도 필요합니다.
- 현재 솔루션: 생각보다 기업은 더 합리적입니다. 그 얘기는 이미 겪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솔루션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A) 원래 해결하려던 문제, B) 그 원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 C) 그 솔루션으로도 해결이 안 되는 문제를 구분해서 파악하는 것이 좋습니다.
- 기업 문화: 기업 문화 역시 고객이 겪는 문제에 영향을 줍니다. 당연하게도 수평적인 문화를 가진 고객과 수직적인 문화를 가진 고객의 문제는 꽤나 다릅니다. 그런 점에서 문화 역시 고려할 사항입니다.
ICP라는 것이 이런 모든 항목을 굉장히 디테일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면...저 위에 나온 항목들 중에서 유효하지 않은 항목까지 채우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니까요. 반대로 어떤 항목은 엄청난 디테일을 필요로 하겠죠. 그래도 저는 처음 하던 것이라서 억지로라도 좀 채워보려는 시도를 해봤어요.
문제에서 출발하는 ICP 가설(JTBD 방식과 일맥상통)
앞서 B2B SaaS ICP를 설명하면서 저는 계속해서 문제를 강조했습니다. 이건 그냥 저의 느낌적인 느낌인데요. B2C 제품의 고객은 합리적 속성(문제를 해결하길 원하는)과 욕망 속성(재미, 자랑스러움, 뽐내고 싶음)을 다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B2B 고객도 어느 정도는 욕망 속성(일종의 야망 같은..)이 있지만, 그래도 결국 도구를 구매하는 것이라서 합리 속성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즉, 더 집중하는 것은 문제 해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제일 집중할 점을 문제 혹은 pain point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문제에서 출발하는 ICP 가설을 세웠고, 크게 3단계로 진행했습니다.
- 고객 문제 정의하기: 사실 고객을 정의한 다음에 문제를 정의하는 것이 정석적인데요. 이미 사업을 진행한 SaaS들은 어느 정도 고객이 있는 상태인지라 기존 고객들이 가장 해결을 원하는 문제부터 출발했습니다.
- 생각 펼치기(발산): 마인드맵을 통해서 고객 문제가 발생한 맥락과 스스로 해결이 어려운 맥락들을 정리하면서 그 맥락을 만드는 고객의 속성이 무엇인지를 정리했습니다.
- 생각 모으기(수렴): 여러 특성이 도출된 다음에 이것을 카테고리별로 나누고, 큰 고민 없이 fact로 둘 수 있는 것들과 가설로 둬야 할 것, ICP 가설에서는 제외해야 할 것들을 정리했습니다.
이렇게 적고 보면 그냥 Jobs-To-Be-Done 방식입니다.
1단계: 고객 문제 정의하기
이 부분은 이미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상태에서 출발했습니다. 제가 담당하는 제품은 이미 고객에게 유료로 서비스를 하고 있었고, 고객의 문제 중에서 다음의 2가지를 알고 있었어요.
- 서비스 도입을 고민하면서 해결되길 기대하는 문제
- 서비스 도입을 한 후에도 아쉬움을 표하는 문제
위 두가지 상황에서의 고객 문제를 알다보니까 거기에서 출발할 수 있습니다. 만약 고객이 없거나, 문제를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고객의 러프한 정의 -> 문제 -> 고객 -> 문제를 계속 반복하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2단계: 생각 펼치기(발산)
그렇기에 저는 ICP의 속성을 도출하기 위해서, 고객이 가장 많이 요청하는 문제를 가장 먼저 적었습니다. 뒀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로부터 다음의 2가지 방향의 마인드맵을 그려봤습니다.
- 문제 해결이 필요한 상황이나 맥락
- 문제 해결이 어려운 상황이나 맥락
예를 들면 이런 식이죠.
- 문제: 고객은 B2B SaaS 구독을 너무 많이 하면서 발생하는 비용 로스를 줄이고 싶다.
- B2B SaaS 구독 비용 로스를 줄이고 싶게 된 상황이나 맥락은 무엇일까?
- 고객이 스스로 B2B SaaS 구독 비용을 관리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들을 놓고 양방향으로 마인드맵을 쭈욱 펼쳐봤습니다.

이렇게 펼쳐진 생각들을 가지고, 다시 귀납적으로 카테고리를 분류하고, 그 맥락을 상세하게 정리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이것을 가지고 팀원들이랑 엄청나게 다양한 방식으로 토론을 했습니다. 노션 문서 하나에만 30개가 넘는 댓글이 달리고, 4주 정도 동안 미팅도 수차례 하고, 각각의 속성과 특징별로 깊은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3단계: 생각 모으기(수렴)
마지막으로 발산을 통해 만든 ICP 가설을 여러 사람들과의 실시간 동기화를 통해서 가설에서 검증할 것인지, 아닌지를 논의했습니다.
이 과정을 거쳐서 원래 가지고 있던 가설들을 다음의 3가지로 나눴습니다.
- 가설로서 계속 검증할 것
- fact로 둬도 될 정도로 이미 검증된 것
- 기각, 즉 가설로 두기에도 논리가 불충분한 것
이 과정에서 집중한 것은 누군가에게는 fact이고, 누군가에게는 가설이라면 이것이 맞는지 틀리는지를 논쟁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각자의 의견이나 생각을 드라이하게 들어보고, 가설에 포함할지 fact로 둘 것인지는 퍼실리테이터로서 제가 그냥 판단했습니다.
결론: 그래서 흥했냐고?
이런 단계를 거쳐서 <ICP_가설_2024-02>를 만들었습니다.
2024년 2월이라니! 정말 대단한데요. 어떻게 되었나요??
앞서 말했지만, 여기에서 뭔가를 더 하지 못 했습니다. ㅠ 당면한 여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당면한 여러 문제는 ICP와는 무관하게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고..그러면서 이 일은 떠내려갔습니다.
물론 저 가설 검증을 GTM 과정에서 하려고 했는데, 그것이 잘 워킹하지 않았던 것도 있고요. 다음에는 이 실패기를 회고해보고 정리해서 공유 드려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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