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함께 사고하기: 정답에서 설계로
AI를 단순한 도구가 아닌 '가상의 동료'로 대하면서 얻은 경험을 정리했습니다. "정답이 뭐야?"라고 묻는 대신 "함께 설계해보자"라는 접근으로 바꾸면, 사고의 확장과 맥락의 이해, 학습의 질이 달라집니다. 물론 효율성과 의존성의 한계도 있지만, 질문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AI는 사고의 파트너가 될 수 있습니다.

최근에 작성한 Product Pager에 AI 활용하는 글에서도 적었지만, 나는 AI의 활용을 어느 순간부터는 정답을 요구하기보다는 내가 생각하지 못하는 지점을 밝히거나 내가 상상하기 어려운 케이스를 상상하는 것에 사용한다. 검색엔진처럼 쓰면서 "이 문제의 답은 뭐야?", "가장 좋은 방법을 알려줘",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줘." 같은 프롬프트를 입력하기보다는 '가상의 동료'로 대하는 것이다.
이 작은 관점의 전환이 생각보다 큰 차이를 만들어냈는데, 단순히 답을 얻는 것을 넘어, 함께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경험에 대해서 정리하고자 한다.
AI와 함께: 도구에서 협력자로
통상적으로 우리는 AI를 '도구'로 인식한다. 입력을 넣으면 출력이 나오는, 조금 더 똑똑한 계산기 같은 존재 말이다. 하지만 GPT나 Claude 같은 대화형 AI의 등장으로 이 관계는 미묘하게 변하고 있다.
내가 말하는 '가상의 동료'로서의 AI는 이런 의미다. 완벽한 정답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나와 함께 문제를 바라보고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해볼 수 있는 존재. 때로는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관점을 제시하고, 때로는 내 아이디어를 확장하거나 구체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존재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AI와의 대화는 단방향적인 질의응답이 아니라 쌍방향적인 협업 과정이 된다. 나는 문제나 상황을 제시하고, AI는 그에 대한 다양한 접근 방식이나 구조를 제안한다. 그 과정에서 서로의 아이디어가 만나며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답이 아니라 설계를 요청한다.
이런 협업 방식의 핵심은 '질문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정답이 뭐야?"라고 묻는 대신 "이 문제를 성공하는 Product Manager라면 어떻게 접근하고, 실패하는 Product Manager라면 어떻게 접근할까?", "이런 상황에서 고려해야 할 요소들을 함께 정리해보자", "이 아이디어를 어떤 구조로 발전시켜볼까?"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때, 내가 원하는 답을 말하기보다는 "과정을 함께 설계해보자."는 접근을 한다.
이런 프롬프트의 장점은 여러 가지다.
첫째, 사고의 확장이 일어난다. 정답을 요구할 때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목표지만, 설계를 요청할 때는 여러 가능성을 탐색하게 된다. 문제를 바라보는 다양한 렌즈를 얻을 수 있고, 습관처럼 내게 고착화된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다. 본인이 동일한 의사결정이나 현상에 대해서 남들보다 적은 의문을 가지고 있다면 이런 사고의 확장이 도움이 된다. 나는 특정 현안에 대해서 동료들에 비해서 질문이 좀 적은 편이라 특히 도움이 되었다.
둘째, 맥락의 이해가 깊어진다. AI에게 단순히 답을 요구하면 일반적인 정보를 받게 되지만, 함께 설계하는 과정에서는 내 상황과 맥락에 맞는 맞춤형 접근을 만들어갈 수 있다. 예를 들어 "마케팅 전략을 알려줘"보다는 "우리 제품의 특성과 타겟을 고려했을 때, 어떤 마케팅 접근 방식들을 검토해볼 수 있을까?"라고 물으면 훨씬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논의가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내가 정답을 도출하면서 생략했던 정보들을 다시 반영할 수 있다.
셋째, 학습의 질이 달라진다. 완성된 답을 받아들이는 것과 설계 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다. 후자의 경우 논리의 전개 과정을 함께 따라가면서 사고 방식 자체를 학습할 수 있다. 특히 AI에게 역할을 부여해서 프롬프트를 설계하고, 그 역할에 해당하는 실존 인물 관점의 답을 요구하면 더 좋아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AI를 더 좋게 만들기 위한 노력(AI에게 특정 인물의 관점을 학습 시킴)이 도움이 된다.
넷째, 메타인지 능력을 기를 수 있다. AI와 함께 사고 과정을 설계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관찰하게 된다. 이게 결국 혼자서도 더 나은 사고를 할 수 있는 근육을 기르는 것에 큰 도움이 된다.
이 방식의 한계: 솔직한 성찰
물론 이런 접근이 만능은 아니다. 몇 가지 분명한 한계가 있다. 자주 한계를 만난다.
첫째, 효율성의 문제다. 뭔가 정답이 명확하게 있는 것 같은 일을 할 때에는 꽤나 비효율적이라는 인식을 하기 쉽다. 내 머릿 속에는 정답이 있는데 AI와 함께 그 답을 찾아나가는 설계를 하다보면 '역시 AI랑 이런 이야기까지 하는 것은 너무 비효율적인데?'라는 생각을 하기 쉽다. 잘 생각하면 나의 뇌에서 5분이면 나올 결론을 AI랑 2시간 동안 대화하면서 도출하는 기분이 들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겸손하지 않은 사용자가 이 과정을 밝으면 특히 더 비효율이라고 느낀다.
둘째, 의존성이 커짐에 따르는 위험이다. AI와의 협업이 편하다 보니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나 능력이 줄어들 수 있다. 모든 문제를 AI와 함께 풀려고 하다 보면 독립적인 사고 능력이 약화될 수도 있는데, 사실 이런 상황의 장기적인 지속이 어떤 리스크가 있을지를 현재의 나는 가늠하긴 좀 어렵다. 사람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엑셀의 시대에 여전히 계산기로 한땀한땀 계산을 하는 것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사고력의 상실로 볼 것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셋째, 할루시네이션 리스크다. 나는 아내에게 "GPT는 좀 아부꾼 같을 때가 있어"라는 말을 하는데, AI가 제안하는 설계나 구조가 내 마음에 든다는 시그널이 잘못 들어가버리면 AI는 점점 더 '가상의 아부꾼'이 되어버릴 수 있다. 즉, 확증 편향이 더 커지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용자가 충분한 역량을 갖추지 못하면 오히려 더 나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넷째, 창의성의 역설이 있다. AI와의 협업이 창의적 사고를 확장해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AI의 패턴에 익숙해지면서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만 사고하게 될 위험도 있다. 진짜 혁신은 때로 완전히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오는데, 이런 가능성을 제한할 수 있다.
결론: 질문을 바꾸는 힘
결국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AI를 정답 제공자로만 대하지도, 만능 협업자로만 의존하지도 않는 것. 상황과 목적에 따라 적절한 접근 방식을 선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뭐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지..)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질문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전혀 다른 경험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답을 알려줘"에서 "함께 생각해보자"로 관점을 전환하면, AI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사고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 물론 이건 AI와의 관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동료와의 협업에서도, 학습 과정에서도, 심지어 혼자 문제를 해결할 때도 비슷한 원리가 적용된다. "정답은 무엇인가?"보다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AI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똑똑한 질문, 더 똑똑한 설계일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원하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해서 사고를 멈추는 오만을 버리고 겸손을 택해야 하고, 이 과정이 낭비가 아니라 배움이 있음을 계속 믿고 우직하게 탐험하는 끈기가 꼭 필요하다.